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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

요지경

최근 서울의 한 공공기관 식당에서 근무하는 30대 초반 여자 영양사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같은 식당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B를 친여동생처럼 대했는데,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B는 영양사보다 열살가량 어렸다.

재작년 여름 영양사는 B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잘 알고 지내는 사법연수원생이 있는데, 언니한테 이 쪽지를 전해달래"라는 B의 말에 영양사는 기쁜 마음으로 쪽지를 펼쳐 보았다. "한번 사귀어보자"는 내용이었다.

'노처녀' 영양사와 사법연수원생의 교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둘은 급속히 가까워졌고 가끔 관계도 가졌다. 영양사에겐 예비법조인 애인을 소개해 준 B가 더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마침 연수원생 애인도 "내가 시험 붙기 전에 B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B가 해달라는 대로 모두 해주면 나중에 내가 갚겠다. 어차피 우린 결혼할 사이가 아니냐"고 했다. 영양사도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영양사는 B의 부탁이면 무엇이든 들어주려고 했다. 밥값, 술값 등 유흥비를 댔고 카드 대금이 없다고 하면 돈도 보내 주었다. 애인을 만나기 전엔 늘 B와 시간을 보냈다.

영양사의 불행은 애인과 교제 1년쯤 됐던 작년 7월 벌어졌다. B의 자취방에서 놀고있던 영양사가 애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동시에 B의 전화기에서 메시지가 수신되었던 것이다. 당시 B는 전화기를 놓고 부엌에 가 있었다.

영양사는 혼돈에 빠졌고, 애인과의 지난 만남을 되새겨보았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받은 '쪽지'는 물론 사법연수생도 모두 B가 꾸며낸 거짓이었다.

B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각종 만남을 대행해주는 남자를 고용했고, 그에게 영양사를 만나 사법연수생 행세를 하라고 시켰다. 남자는 영양사를 만나는 대가로 B로부터 1차례에 10만원씩 받았다. 남자는 4차례 영양사와 거짓 데이트를 했는데, 둘 사이가 적당히 가까워진 뒤부터는 B가 그 남자 행세를 했다. 영양사가 애인과 주고받은 전화번호 역시 B의 것이었다. B는 전화기 한 대로 두 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듀얼폰'을 갖고 있었다.

영양사와 잠자리를 가진 것도 B였다. 영양사는 관계를 갖기 전 애인으로부터 늘 '모텔에 가서 조명을 모두 끄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건 본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B의 '계략'이었다. B는 패드와 스포츠 브래지어로 가슴을 압박한 채 느지막이 모텔에 들어갔고, 성인용 기구를 이용해 영양사와 관계를 가졌다. 영양사가 어둠 속에서 얼굴을 보거나 몸을 더듬으려고 하면 B는 영양사의 눈을 가리고 손을 제지했고, 남자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전모를 파악한 영양사는 B를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혐의는 사기와 상해죄였다. 현금 210만원을 가로챘고, 각종 데이트 비용 등 1200만원을 쓰게 했으며, 자기 몸에 상처를 입혔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B는 수사 과정에서 가짜 사법연수생을 동원하고 영양사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은 것은 인정했지만, 상해죄에 대해선 "고의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B는 "영양사 언니가 교제하던 남자 친구와 다른 직원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게 안쓰러워 사법연수생 애인이 있으면 언니가 자신감을 되찾을까 싶어 그렇게 했다"고 진술했다. B는 검찰이 사기와 상해 혐의를 모두 적용해 벌금형에 처하자 이에 불복해 최근 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24/2012022401442.html